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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답은 아니어도, 오래 살아남은 답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 경험을 정답으로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배운 것을 전할 수 있다. 오래 살아남은 방식의 이유와 조언의 태도에 관하여.

HIGH ABOVE.
DEEP WIT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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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A BRIGHTER TOMORROW.

“네가 답은 아니잖아.” 맞는 말입니다. 내가 살아온 방식이 모두에게 맞을 리 없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틀릴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하나의 답만 있는 문제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시대가 지나면서 우리는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예전에는 선배나 형들이 후배를 붙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 게 좋다.” “내가 해봤는데, 그 길은 꽤 힘들더라.” 물론 그중에는 시대에 맞지 않는 조언도 있었을 겁니다. 자신의 경험을 정답처럼 강요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나이와 경험을 권력처럼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씩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고,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방향으로 말입니다. 좋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우리가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조차 어려워졌습니다. 예의가 없어 보여도, “요즘은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 책임감이 부족해 보여도, “사람마다 일하는 방식은 다른 거니까.”

누군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도, “내가 답은 아니니까.”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말들이 반복되다 보면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답이 없다는 이유로, 먼저 살아본 사람이 자신이 배운 것을 말해주지 않게 됩니다. 예절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엄격하게 예절을 배웠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예절을 지키지 않는 것을 단순히 그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배우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가르쳐줄 좋은 어른이 주변에 없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이 이야기가 오래 남았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함부로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사람은 어디에서 배워야 할까요?

절대적인 답은 없어도, 오래 살아남은 답은 있습니다

저는 세상에 절대적인 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고전적인 답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살아남은 방식들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사람을 신뢰하고, 받았으면 돌려줄 줄 알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알고, 함께 결정한 일의 책임을 남에게만 돌리지 않는 것. 좋은 팀을 이야기할 때도 비슷합니다. 세상에 모든 조직에 통하는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좋은 팀이라고 소개하는 조직들을 들여다보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신뢰가 있고, 정보를 숨기지 않고, 서로의 의견을 말할 수 있고, 역할과 책임이 분명하고, 실패에서 배우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움직입니다. 정답이 없다면서 우리는 왜 계속 이런 팀을 동경할까요? 좋은 리더에 대해서도, 좋은 동료에 대해서도, 좋은 관계에 대해서도 비슷합니다. 시대와 문화가 다른데도 사람들이 오랫동안 좋다고 말해온 모습에는 이상할 만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무시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래되었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었는데도 계속 남아 있는 것이라면, 적어도 왜 살아남았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말하는 고전적인 답입니다.

내가 답은 아니어도, 내가 배운 답은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내가 그 답을 알고 있다고 해서 내가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경험을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상대가 그대로 살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내가 먼저 걸어봤다고 해서 상대의 길까지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이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 있으려고 합니다. “내가 답은 아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렇다고 내가 배운 답까지 말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겪은 실패를 이야기하고, 내가 배운 것을 전하고, 오랫동안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겨온 것이 있다면 왜 그런지도 이야기해줄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선택은 그 사람의 몫입니다. 존중한다는 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해준 뒤에도 상대가 자신의 답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하나의 정답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답의 가치가 같은 것도 아닙니다. 어떤 답은 한 시대와 함께 사라지고, 어떤 답은 수많은 사람의 시행착오를 견디며 다음 세대까지 남습니다. 그래서 오래된 답을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어도, 쉽게 낡았다고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누군가 “그게 꼭 답은 아니잖아.”라고 말한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맞아. 그것만이 답은 아니야.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 답을 선택해온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책을 읽는 이유는 답이 아니라, 내 생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책과 기록은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묻게 한다. 수많은 목소리 속에서 내 생각을 잃지 않기 위해 읽는다는 것.

양승민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질문은 멈춥니다

같은 질문에도 경험과 관점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온다.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도 질문을 멈추지 않으려는 이유.

양승민

직관은 경험이 압축된 결과입니다

빠른 판단 뒤에는 경험과 학습이 쌓여 있다. 직관을 결론이 아닌 확인할 신호로 받아들이고, 근거로 교정하는 태도.

양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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