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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 없을 때, 제품의 철학이 기준이 됩니다

일정과 품질, 규칙과 예외가 충돌할 때 무엇을 지킬 것인가. 함께 내리는 선택을 일관되게 만드는 제품 철학의 역할.

HIGH ABOVE.
DEEP WITHIN.
SOFTWARE
PEOPLE
A BRIGHTER TOMORROW.

자소서에서 가장 어려운 문항 중 하나가 “어떻게 사람들과의 갈등을 해결했나요?” 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회사에 오기 전까지 사람들과 큰 갈등을 겪은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의견이 다르면 어느 정도 양보했고,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되는 편을 택했습니다. 대부분의 관계에서는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조금 달랐습니다. 회사에서는 서로의 역할과 일정, 책임이 직접 맞물려 있습니다. 상대가 바빠 보여 한 번 도와준 일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제 역할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진짜 중요한 순간에 양보를 얻기 위해서 다른 부분들을 양보해주면, 양보가 반복되면 어느 순간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계속해서 양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상대를 설득할 수 있을까? 어떻게 행동해야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그래서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양한 무리에 속하며 사람들의 속마음도 들어봤습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저는 ‘어떻게 말해야 상대를 설득할 수 있을까’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갈등은 서로 다른 기준에서 시작됩니다

갈등은 누군가가 잘못해서 발생하기보다, 서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빠르게 끝내는 것이 좋은 선택이고, 품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시간이 걸려도 제대로 만드는 것이 좋은 선택입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둘 다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쪽의 의견으로 설득하는 것으로는 쉽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각자가 가진 기준보다 한 단계 위에서, 우리가 함께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먼저 합의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갈등을 바라보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의 목표와 제품을 위해 함께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답이 없을 때는 더 높은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우리는 어떤 가치를 가진 제품을 만들고 싶은가?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품의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나 데이터베이스를 다루는 책을 보면 성능, 안정성, 확장성, 유지보수성처럼 여러 품질 속성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이런 기준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것을 동시에 최대로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볼 것인지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고, 그 선택을 일관되게 만드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철학이라는 것이 거창하지 않습니다. “사용자 중심”, “단순함”, “안전성”, “가시성”처럼 간단하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문구가 가진 힘도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선택의 순간에 그 가치를 사용할 수 있느냐입니다. 일정과 품질이 충돌했을 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새로운 기술과 검증된 기술이 충돌했을 때 어떤 것을 쓸 것인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 때는 철학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에 무엇을 지킬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철학이 필요합니다. 가치는 선언하는 것이고, 철학은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품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가치는 선언하고, 철학은 선택으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일정이 부족한 순간에도 품질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할 수 있는지가 실제 철학을 보여줍니다.

결국 제품의 철학은 소개 자료에 적힌 문장이 아니라, 우리가 반복해서 내리는 선택 속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정권자의 선택이 철학을 담지 못한다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제품 속에서 그 철학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규칙보다 철학이 필요한 이유

우리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코딩 가이드라인, 개발 절차, 리뷰 방법, 시험 기준 같은 수많은 규칙을 만듭니다. 하지만 규칙만으로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왜 이것을 지켜야 하는 걸까?”라는 질문에 “규칙이니까”라고만 답하면 사람은 규칙을 지킬 수는 있어도 그 의도까지 이어가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그 규칙이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는지 이해하면, 규칙에 없는 문제가 생겨도 같은 철학에서 새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규칙은 과거에 고민했던 결과이고, 철학은 앞으로 마주할 문제를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그래서 규칙의 개수보다 그 규칙이 만들어진 이유를 공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을 공유한 사람들은 모든 상황에 대한 규칙이 없어도 비슷한 방향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을 만들어도 하나의 방향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준이 있다고 해서 항상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가치가 틀렸음을 깨닫고 기준 자체를 바꾸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준이 있다면 적어도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이 선택을 했는지,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 기준으로 유지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준이 없다면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알기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과 갈등 없이 지내는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갈등을 없애는 것 자체가 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갈등은 자연스럽게 발생합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양보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위해 함께 일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공통된 기준이 있다면 개인의 주장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이 맞는가?”가 아니라 “우리의 기준에 더 가까운 선택은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제품에는 선택의 흔적이 남습니다

좋은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좋은 기능을 많이 넣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수많은 선택의 순간마다 그 가치를 지켜나가는 것. 그리고 시간이 지나 제품을 바라봤을 때, 우리가 했던 수많은 선택 속에서 하나의 일관된 가치가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 그렇게 제품에 가치가 담기게 됩니다.

책을 읽는 이유는 답이 아니라, 내 생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책과 기록은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묻게 한다. 수많은 목소리 속에서 내 생각을 잃지 않기 위해 읽는다는 것.

양승민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질문은 멈춥니다

같은 질문에도 경험과 관점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온다.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도 질문을 멈추지 않으려는 이유.

양승민

직관은 경험이 압축된 결과입니다

빠른 판단 뒤에는 경험과 학습이 쌓여 있다. 직관을 결론이 아닌 확인할 신호로 받아들이고, 근거로 교정하는 태도.

양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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